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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궤도연대공동투쟁 20주년 특별 기획연재] 대구지하철노동조합 7·21 총파업투쟁과 궤도연대의 공동투쟁 ③ 88일 총파업투쟁은 업종과 지역을 넘어선 투쟁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7-15 19:54
조회
588
[7·21 궤도연대공동투쟁 20주년 특별 기획연재] 대구지하철노동조합 7·21 총파업투쟁과 궤도연대의 공동투쟁 ③

88일 총파업투쟁은 업종과 지역을 넘어선 투쟁

- 기고 : 이원준 대구지하철노조 4·5대 위원장

대구지하철노동조합 총파업투쟁은 지역과 업종을 넘어선 연대투쟁의 모범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총파업투쟁 전야제부터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의 총파업투쟁에 동참한 동지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는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더욱 강화되었고 “노동자는 결코 둘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대구지하철노동조합 총파업투쟁은 단위노동조합의 투쟁만이 아니라 사회공공성, 안전한 지하철, 온전한 주5일제 등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총노동-총자본의 대립구도 속에서 진행된 한판 큰 싸움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교섭구도 또한 노사간 단선적 형태가 아니라 대구시, 정부, 총연맹, 공공운수연맹, 지역본부 등 대각선 교섭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다양한 교섭이 진행되면서 대구시가 시민중재위에 동의하고, 중재안을 제시하는 등의 일부 성과가 있었다. 또한 교섭지원을 위해 공공연맹 임원과 궤도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이 월배기지에 상주하는 등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지원이 계속되었다.



총파업 전야제부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산하 노조·민주노동당·노동단체 등의 동지들이 결합하였고, 총파업 1일차부터 시작된 시청 집회·선전전 등에 금속·공공·보건·일반노조 등의 조합원들이 업종을 초월하여 적극 결합하였다. 특히 시청 앞 천막농성은 지역의 각 산별연맹이 담당하면서 시청을 압박하는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물품지원과 인도주의실천의사회와 함께 진료활동을 벌이는 등 전폭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연대를 보여주었다. 또한 문화예술노조도 자신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수백일간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서울·광주 등 전국의 문화예술노조 동지들이 월배기지를 방문하여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지원 투쟁이 있었다.



<주요 연대투쟁 사례>

▷ 7월 22일 :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강연

▷ 7월 23일 : 파업지지 민주노총 대구본부 기자회견

▷ 7월 28일 : 시청앞 집회에 청소용역노조 조직적 참여, 공무원노조 대경본부 - 지하철파업지지, 대체인력 투입 거부 성명서 발표

▷ 7월 29일 : 지역본부 산하 및 각 연맹별 노조 시민선전전 결합

▷ 8월 이후 : 지역본부 - 지역일간지 신문광고 게재, 시청 앞 천막농성 각 연맹별 순환제 실시, 지역본부 산하 조합원 모금운동 전개, 대구시 및 공사 항의전화 및 항의글 게시운동 전개

▷ 8월 : 일본 JR총련, 뉴질랜드 철도해운 노조 등 해외 노동연맹 - 대구시 항의 팩스 송부 및 재정지원

▷ 8월 19일 :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파업지지 및 대구시 규탄, 해결 촉구)

▷ 전국 궤도노조 소속 조합원 투쟁기금 모금

▷ 9월 9일~ : 시민사회단체 중재안 발표 및 시청 앞 1인시위전개

▷ 9월 30일 :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 지지방문

▷ 이외 지지방문, 기금모금, 단위노조별 현수막 걸기 등 전국동지들의 지원과 연대는 총파업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되었다.



<파업투쟁의 진행 경과>

2004년 대구지하철노동조합 7.21 총파업투쟁은 전면 총파업 88일을 포함하여 현장투쟁 212일 만에 노사합의를 체결한 엄청난 싸움이었다. 물론 합법파업이라는 조건 속에서 장기 투쟁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파업투쟁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난 대구시와 지하철공사의 전방위적 노동탄압과 무노동 무임금 등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88일간의 전면파업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였으며(시청 앞 대규모 투쟁만 20여회), 대규모 전체 집회가 없는 날은 본부별 본사앞 결의대회, 시민선전전 등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하였다. 월배기지 거점 총파업투쟁은 7월 21일부터 8월 15일까지 총 25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거점투쟁 기간 동안의 조직률은 80% 이상을 유지하였다.

9월 중순의 2차 서울 상경투쟁 이후 사실상 70% 이하로 조직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대구시와 지하철공사의 교섭 회피와 노조 탄압으로 투쟁 승리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무노동 무임금에 따른 임금 손실로 조합원들의 생계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었다.

<총파업 기간 중 조직률 변화 추이>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의 최장기 파업투쟁은 2003년 중앙로역 화재참사로 엄청난 희생이 있었음에도 현장노동자들만 죽고, 다치고, 구속되어 처벌받은 상황에 대한 현장조합원들의 분노가 응축된 결과였다. 참사가 발생한 도시에서 또다시 2호선 개통을 준비하면서 안전을 뒤로 하고, 인력감축과 대대적인 외주용역․민간위탁 등을 추진하는데 대한 조합원들의 분노와 도의적인 책임의식이 뒷받침된 투쟁이었다. 또한 대구지하철노동조합 최초의 파업투쟁이었던 2003년 6․24 총파업이 안전관련 특별단체협약과 정기단체협약에서 큰 성과로 마무리되어 현장조합원들의 단결력이 고양되고 투쟁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하였으며, 노조집행부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2004년 투쟁 이후, 노사합의 불이행과 정기 임단협 교섭으로 2005년 12월 8일에 또다시 파업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13명의 해고와 33명의 징계, 1억원이 넘는 벌금, 투쟁기금 고갈로 인한 채무, 파업 불참자와 복귀자로 인한 현장의 분열 등으로 노동조합의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2006년 7월, 위원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치러진 제6대 노조집행부 선거에서 노사협조주의 집행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현장은 분열과 패배의식 속에서 점점 침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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