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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소식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공지사항

[기고] 첫 번째 궤도 공투, 전지협 파업 30년을 기억하며 (나상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8-06 14:32
조회
493
첫 번째 궤도 공투, 전지협 파업 30년을 기억하며

나상윤 / 강서양천민중의집 운영이사

*출처: 전국철도노동조합 홈페이지



전지협 파업 3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20주년 기념행사를 부산에서 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벌써 30주년 행사라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세 번의 강산이 변하는 시간. 그해 6월에 함께했던 많은 선배 동지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해졌다. 선배들 대다수는 퇴직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서선원 전기협의장, 김연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등 몇몇 선배는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문득 희미해진 기억을 되돌려본다. 30년 전으로. 서울지하철노조의 채용 상근자로서 선전홍보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강진도 어용집행부를 몰아내고 93년 5대 집행부를 맡은 ‘독사’ 김연환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열망을 바탕으로 곧바로 93년도 임단협에 돌입했다. 하지만 김연환 집행부는 87년 민주노조 설립 이후 쉬지 않고 전개된 투쟁과 또 어용집행부로 인하여 망가진 조직체계를 정비하고 노조 활동의 장기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무엇보다 집중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의 전신이었던 전노협에서 모범 단협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연환 집행부의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어용집행부 시절을 겪은 조합원들은 민주노조 복원 이후 기대가 너무 크고 높았다. 조합원들은 93년도 임단협 결과에 아쉬움을 강하게 표출했다.



김연환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이러한 열망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94년 임단협을 준비했다. 89년 단독파업의 쓰라린 패배 경험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공동투쟁을 준비했다. 처음으로 민주집행부가 들어선 부산지하철노조 그리고 어용철노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향하던 전국기관차지부협의회(전기협)과 함께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전지협을 결성했다. 24시간 맞교대 철비근무라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철도노동자들은 변형근로시간제를 거부하고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였고, 서울과 부산지하철노동자들은 저임금을 강요하고 단체교섭권을 무력화시키는 ‘임금가이드라인 철폐’를 핵심 요구로 내걸었다. 궤도노동자들의 공동파업을 막기 위한 김영삼정부의 분열 책동과 강경대응이 있었지만, 동종업종 노동자로서 구성된 전지협은 27일로 예고한 파업돌입을 앞두고 강고한 대오를 유지했다. 위기감을 느낀 김영삼정부는 6월 23일 철도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침탈해 공투를 저지하려고 하였지만 서울지하철노조는 24일에 부산지하철노조는 25일에 연이어 파업에 돌입하면서 투쟁의 확산과 궤도노동자들의 약속을 지켰다. 거점투쟁∙산개투쟁 등 다양한 전술을 운용하면서 정부에 맞섰지만 강경탄압을 넘어서지는 못했고, 문민정부라고 하지만 친자본 성격과 폭력적 관성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복귀 후 한동안 징계, 해고, 손배에 시달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궤도라는 동종업종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은 정부와 자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이후 산별노조운동과 공공부문 노조운동의 성장 그리고 민주노조 총단결에 기여했음이 널리 인정되었다.

https://youtu.be/ywTHdS-zssE?si=D4sogb3K9bJdNjFd

94년 궤도투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6월 25일 한겨레신문 의견광고란에 올라온 전기협의 성명이었다. 동맹파업의 약속을 지켜 파업에 돌입한 서울지하철노조동자들의 의리에 감사하는 내용이었다. 서울지하철노조도 부산지하철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이후 동일한 내용의 의견광고를 한겨레신문에 실었다. 궤도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의 전통은 94년 공투에서 시작된 것이다.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이고 물류를 멈춰서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를 알게 해준 그날의 기억... 이제는 나이가 들어 다소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시절이며 나에게는 화양연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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