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기관사 총단결 투쟁으로 따끔한 맛을 보여주자!
– 철도안전법 과태료 제도 폐지하자!
한 기관사가 철도안전법 운전업무종사자 준수사항 위반으로 과태료 150만 원을 받았다. 작년 전국 기관사들이 단결하여 반대했던 바로 그 조항, 과태료 등 처벌 강화의 철도안전법과 관련 시행령 개악안이 그대로 시행(2020.10.8)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첫 적용 사례인 듯한데, 우리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는 전수 조사를 다시 하여, 전국 운전 현장에 같은 사례가 더 있는지 알아 볼 계획이다.)
우리는 철도안전법에 의한 종사자 처벌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여, 작년에 전국 기관사들의 지혜를 모아 관련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우리의 개정안은 국회에서 발의되지 못했고 국회가 준비한 개악안이 시행된 뒤 이런 일이 벌어져, 정말이지 화가 나고 분노에 잠을 설칠 지경이다.
사건 개요
3월 1일 낮 1시쯤, 영등포역-광명역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 한 대가 독산역에서 다음 역인 금천구청역 방향으로 5분 늦게 출발했다. 이곳은 상시 지연구간이다. 금천구청역부터 광명역까지는 KTX 고속전용선으로 지연 출발은 다른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구간에서 기관사들의 부담은 늘 크다. 게다가 금천구청역 정차 시간은 단 30초. 기관사 혼자 전동차의 정차와 출발 사이의 기계적 조치, 광명역이 아닌 수원행 승객들에 대한 육성 환승 안내 같은 정보 전달, 전동차 문과 승강장안전문 개폐에 따른 승객 안전을 위한 점검, 이 모든 것을 단 30초에 끝내고 늦어진 5분도 만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기관사가 역에 도착해 전동차 문을 열었는데 전동차 문의 개폐에 따라 자동 개폐되는 스크린도어가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하필 3.1절 휴일에 비까지 오는 이날, 평소에도 적은 승객이 더 적어 승객 동선 예측이 힘들었다. 결국 스크린도어의 작동 상황을 보여주는 모니터 HMI에만 의존했다. 기관사는 HMI 신호가 초록불에서 소등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30초 안에 해야 할 일들과 5분 지연을 회복할 생각에 조급해졌다. 평소에도 장애가 많아 애먹이는 스크린도어였지만, 기관사는 급한 마음에 HMI를 끝까지 보지 않고 안내 방송을 했다. 이어서 전동차 문을 닫았고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는 표시가 뜨자 다시 열고 닫았다. 정상 상황에서라면 이때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어야 했다. HMI 신호도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기관사는 바쁜 와중에 잠깐 놓친 HMI의 신호 하나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은 채였다는 걸 모른 채 모두 문이 닫힌 걸 확인 후 그대로 출발했다. 결국 열차를 놓친 민원 몇 개가 철도공사로 들어왔고 사건 발생 두어시간 만에 150만 원짜리 “과태료 처분 사전통지서”가 해당 기관사에게 전달되었다.
분노의 이유
첫째, 과태료 150만 원은 철도안전법 운전종사자 준수사항 위반 시 최초 1회에 해당하는 액수이며 경고 따위는 없다. 게다가 3회 이상이면 500만 원까지 처분 가능하다. 그런데 과태료를 부과하는 사례는 대게 이런 경우다. 시스템과 조건에 의해 있을 수 있는 실수를 조금치도 인정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처벌 중심주의다. 실제로 작년, 개정 전에는 30만 원이었던 것을 150만 원으로 올릴 때 여야 국회의원들은 “철도 안전에 대한 종사자들의 경각심 고취”를 위해 과태료 액수를 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처벌을 강화하면 안전도 자동적으로 강화한다는 책상머리 정치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둘째, 철도 종사자가 아무리 무오류의 신이라도 철도라는 시스템은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PSD 자동 설비처럼 첨단 장비나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장애는 어쩔 수 없다. 장애가 난 경우, 종사자는 승객의 안전을 우선해 확보하는 것이 책무다. 이 때문에 시스템 자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인적 오류를 사전 예방하는 조치들이 중요하다. 그런데 위 사례는 장애가 있는 승강장안전문, 짧은 정차 시간, 상시지연구간, 고속전용선 병행 등의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실수한 기관사 한 명만 가혹하게 처벌한다.
셋째, 과태료는 단지 일부일뿐이며, 더 큰 재앙을 불러들이는 위험의 은닉과 관계가 깊다. 처음에는 150만 원의 거금이지만, 이후 면허정지 등으로 이어지면 월급도 같이 줄어든다. 또한 이런 처벌은 누적적으로 관리되며 현장의 노동자들을 주눅들게 하고 억압적인 현장을 만든다. 그 경우 노동자들은 앞으로 장애나 사고로 이어질 위험 요소를 발견해도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려 하기 보다 임시방편이나 위험의 개인적 기피를 선호하게 된다. 여야 국회의원이 “안전을 위한 철도종사자의 경각심”을 강조할 때 그것은 위험을 더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7월과 8월, 동법 개악안이 우리도 모르게 국회를 통과하고 관련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는 동안, 우리는 국토부를 항의 방문해, 위와 같은 취지로 부당함을 호소했다. 또한 우리는 기관사 2,600여 명의 설문 결과도 전달했다. 기관사들은 개정 전 최초 1회 시 30만 원이었던 것도 많다고 생각했는데(98%) 150만 원으로 상향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80%).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2017년부터 우리는 국토부 철도안전정책과의 책임자와 과태료 부과에 대한 기준이 포괄적이라는 데에 공감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정간 협의를 합의했었다.
이제 정치권과 국토부에 대한 우리의 인내력은 바닥났다. 현장 종사자들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고, 종사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안전이 확보된다는 정치가들의 생각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노정간 협의 약속은 새까맣게 잊고 기관사들의 바람 따위는 개무시해버린 국토부의 일방통행 철도안전 정책도 두고 볼 수 없다. 전국의 1만 기관사들은 소속과 상관 없이 총단결하여 진정한 철도안전이 어떻게 쟁취되는지 보여주자.
행동
첫째, 철도노조 운전국과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는 국토교통부를 항의 방문한다.
둘째, 철도노조 운전국은 이 사안의 심각성과 긴급성에 비추어 오는 12일 전국운전지부장회의를 개최, 대책을 수립한다.
셋째,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는 소속 승무사업소에 항의 현수막을 게시한다.
넷째, 과태료 폐지를 위해 우리가 준비한 개정안의 국회 연내 발의를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