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이정민 기관사 @레일노동저널)
매년 4월 28일은 국제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일이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일터에서 또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고,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이에 맞춰 올해에는 특별히 새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의 인수위 사무실에서 산업 현장의 현실을 폭로하고, 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기에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소속의 이정민 기관사는 기관사의 노동 실태를 폭로하고, 정부에 요구했다. 아래는 이 기관사의 발언 전문이다.
저는 15년 이상 수도권 전동차를 운행해 온 현장 기관사입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우리 기관사들의 노동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2016년 한 기관사가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결국 사망했습니다. 이 죽음은 기관사의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법원 판결에 따라 2020년이 되어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습니다. 노동부가 산재 승인을 해주지 않음에 따라 유족과 노동조합이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것이었습니다. 이 기관사의 죽음이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다고 한 법원에 의하면, 기관사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하여 강박장애와 우을증이 발병하거나 크게 악화되어, 인지능력,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되어 자살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물열차를 운전하던 기관사는 운행 중 고라니를 치어 죽였습니다. 사람을 치인줄 알고 놀란 이 기관사는 결국 오래 가지 않아 뇌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역시 업무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은 노동부와 달리, 법원은 기관사의 업무 특성, 즉 교번근무제에 의한 불규칙한 업무 수행과 이로 인한 상당한 육체적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결국 고라니를 치인 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렀다고 보았습니다.
우리 기관사들은 교번제 근무라는 불규칙한 생활리듬을 만성적으로 조장하는 근무형태에 맞춰 일합니다. 법원이 인용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일반 교대근무와 달리 열차 승무원은 교번근무, 단독근무, 차상근무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최고로 불규칙한 근무형태이며, 이 때문에 육체적 피로, 생활적 소외와 비인간성, 정신적 스트레스, 책임에 따른 심리적 부하가 본직적으로 다르다고 했습니다. 연구보고서와 법원의 판사와 전문가들이 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도 기관사들은 얼마전, 또는 몇해전 죽은 동료들과 똑같은 현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승객 안전의 책임을 오롯이 기관사에게 요구하는 강도 높은 처벌 중심의 각종 법과 제도들은 기관사를 더욱 위축하게 만들고, 이 때문에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최근에는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하겠다고 합니다.
기관사들은 정말이지 비인간적인 근무 조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기관사들은 화장실 갈 권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 기관사 노동자도 사람입니다. 용변을 보지 못하면 운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참다 못해 정차 시간 2-30초 동안에 운전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일을 봅니다. 승객들이 볼지 안 볼지 신경 쓸 겨를도 없습니다. 뒤에 2분 간격으로 열차가 붙어오고 관제에서는 빨리 가라고 독촉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용변을 보아도 이렇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상황에 자괴감이 몰려듭니다. 우리가 몸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것인지, 기관사라면 당연히 3-4 시간 정도는 버텨야 되는지 되묻습니다. 급기야 2007년에는 운전실에서 용변을 보다가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너무 급한 나머지 달리는 기관실의 문을 열고 용변을 보았던 것입니다. 누구나 꼭 필요한 ‘화장실’이 기관사에게는 너무나 멀어, 그만 목숨까지 잃은 것입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철도지하철사업의 산재에 대해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여, 근골격계질환, 폐암, 백혈병 등 빈번하게 발생하는 직업성 질환에 대하여 신속하게 산업재해 승인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철도지하철산업에 맞는 작업환경측정제도를 도입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철도지하철 종사자의 피로위험관리의무제를 도입하여, 충분한 휴게시간 보장, 근무시간의 축소가 필요합니다.
‘기관사는 철도의 꽃’ 이런 미사여구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기관사가 안전하지 않은데, 시민이 안전하길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