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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민주당 조응천 의원의 국토교통위 국정감사 발언으로 죽어 있던 감시카메라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는 불필요하다 못해 실효성도 의심스럽고, 안전예방에 효과에 대한 근거도 없는 미신에 기초한 열차 운전실 감시카메라를 바라는 몇몇 정치가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이들은 기관사들의 머리 위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으면 열차가 더 안전해진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거나, 이를 입증할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민들에게 책임 전가를 위한 희생자 찾기를 위해 그렇게 주장한다. 사실, 철도 지하철 종사자를 ‘마녀사냥’하며 사고만 났다 하면 “인재”를 들먹였던 지배 언론 그리고 수사기관들도 사실상 한 몸이었다. 그리고 결국 국토교통부가 관련 철도안전법 시행력 입법예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가 민주당사 앞에서 긴급히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래는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성명이다. 현재 승무직종대표자회의는 민주당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철도공사 국정감사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또다시 운전실 감시카메라 설치 요구를 했다. 모법인 철도안전법을 시행령이 예외규정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은 2013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요구하고, 이후 2015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하였었다(그 의원들은 상당수가 각종 비리 부패 혐의에 연루되어 있었고 실제로 일부 의원은 그 때문에 사퇴했다). 그 후 기관사들에 대한 인권 침해 및 실효성 문제로 인해 얼마 못 가 국토교통부와 열차 운전종사자들간 협의로 운행정보기록장치가 있는 경우 영상기록장치는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그러나 무슨 일만 터지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지속적으로 노정간 협의에 반하여 운전실 감시카메라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당 의원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감시카메라는 사고조사에 도움은커녕 기관사를 범죄자로 만든다

하지만, 기관사의 모든 운전 조작 상황인 ‘운행상황’은 운행정보기록장치를 통해 기록된다. ‘교통사고 상황파악’은 이미 전방을 비추는 감시카메라로 파악한다. 만약 감시카메라를 운전실에 설치하면 기관사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사고 조사에 도움은커녕 안전사고 위험만 높일 것이다. 감시카메라의 설치 목적은 카메라를 의식한 기관사가 경각심을 가지고 일해야 안전해질 거라는 환상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사고는 기관사가 아무리 정신 차리고 일해도 시스템 오류와 결합하면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데, 기계를 처벌하지 못하는 한 결국 최종 책임자는 기관사 자신이 되는 게 현실이다.

감시카메라는 사고예방과 아무 상관이 없다

돌아보면, 철도사고가 낫다 하면 언제나 기관사가 제1 용의자였다. 차량 결함이나 시스템적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중심에는 항상 기관사가 있었다. 책임을 추궁하고 해명해야만 했다. 2017년 9월 13일 경의중앙선 시운전열차 추돌사고로 기관사가 순직하였다. 찰나의 순간에 하늘의 별이 된 그 젊은 목숨 또한 제1 용의자였다. 사고의 원인은 시스템 오류였다.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던, 철도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감시카메라가 있었다면 그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황당한 믿음에서 나온 감시카메라가 있었다면 그 목숨이 살아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 죽은 이의 책임을 물고 뜯는 날카로운 이빨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동물원 철창 속 원숭이가 아니다. 한 평도 안 되는 운전실 안, 우리의 머리 위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 마라. 전국 1만 운전인은 기계가 아니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의 어려움 속에서도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열차의 안전을 지키며 운전한다. 철도의 안전을, 나의 목숨을 지키고자 사투를 벌이는 우리는 인간이다.

권력가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 국민 위한 일

정말이지 열차 운전실에 달자고 하는 저들의 못된 생각으로는 절대 이해 못 하는 것이 있다. 우리들에게 운전실은 사무실이다. 화장실이다. 식당이다. 그 좁은 운전실에서 승객의 안전한 수송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화장실 가기를 참다참다 간이변기에 그 일을 보고, 그 간이 변기를 그대로 옆에 둔 채 미처 챙기지 못한 식사를 하며 일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모습을 감시하며 우리의 인권과 자존심까지 짓밟아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차라리, 국민혈세를 털어 재벌 기업 챙기며 국가를 위해서라고 하는 너희, 전관예우에 제식구 챙기기, 자기 주머니 채우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라며 호도하는 너희, 권력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천배 만배는 더 국민을 위한 일이다.

현행 유지하라

전국의 1만 운전인이 요구한다. 우리의 목에 감시카메라라는 총칼을 겨누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마라. 시스템의 문제를 우리의 책임으로 전가하지 마라. 우리의 일터를 감시카메라라는 철창에 쌓인 감옥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정부와 국회와 철도공사는 계획된 관련 시행령 개정 준비를 중단하고 현행을 유지하라. 우리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뤄왔던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싸울 것이다.

11. 8. 민주당사 앞 기자회견 장면. 협의회 상임의장,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신필용 철도노조 운전국장, 김웅전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이성완 서울교통공사노조 승무본부장과 기관사, 차장들, 40여명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철도노조 운전지부장들은 민주당사 앞에 앉아 비를 맞으며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비닐을 뒤집어 쓴 채 농성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