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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내 신호 반복 오류 보고했지만 방치된 채 … 기관사 오류 결합해 사고

누구나 실수 가능 인정하고 시스템이 이를 극복해야 하지만, 사고 나면 결국 또 기관사만 처벌

선로분기기 할출 건으로  철도시설물 파손죄 적용 처벌 사례 이례적

유사 사례 늘어날까 … 철도운영기관 종사자들 황당함과 분노  

지난 3월 23일 출근 시간대. 승객을 태우기 위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던 서울교통공사의 한 기관사는 차내 신호가 출발을 표시하자 자신의 출발 순서가 아니었음에도 순간 다른 신호를 무시한채 전동차를 출발, 결국 선로 분기기에서 할출(선로 통과 방향과 다르게 진입)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접수한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철도안전법 위반으로 입건했고, 의정부 지방법원은 약식 재판에 의해 300만원의 벌금 처벌 판결을 내렸다. 

경찰대는 주요하게 철도안전법 제48조 제1호와 제78조 제6항을 적용했다. 제48조 제1호는 철도시설물 파손 행위 금지 규정이고 제78조는 벌칙 규정으로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제48조 제1호를 위반한 사람에 대하여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판사는 “범죄사실”로 “피고인은 … 업무상의 과실로 철도시설인 선로전환기를 파손하여 철도 차량 운행에 위험을 발생하게 하였다” 하고 적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사고가 난 역은 철도공사 관리역으로 해당 사업소 기관사의 증언에 의하면 차내 신호 현시의 시스템 오류가 잦아 이에 대해 노사간 논의에서 안건이 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스템 오류는 방치된 채였고 그러다가 이번 사고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 철도 현장을 잘 알지 못하는 판사가 이러한 사실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드러나 있지 않다. 단지 성문의 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범위 내에서 “업무상 과실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과실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인적 오류와 시스템 오류 사이의 관계는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즉 안전 확보를 위해 있을 수 있는 인적 오류를 과실로 하여 – 중과실이 아니다 – 처벌의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철학은 여기에 개입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어떤 사소한 과실은 – 시스템 오류의 크기가 훨씬 크더라도  –  그 결과가 특정 사고로 이어졌을 경우, 그 과실의 주체인 종사자는 2년 이하 징역을 살 수도 있고 2000만 원 가까이 벌금을 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불안감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현장에 퍼질 듯하다. 

실제로 업무 중 한 번 실수로 인해 “범죄자”가 되어버린 당사자 역시 황당해하고 있다.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책임질 준비는 되어 있다. 이미 사내 징계도 받은 상태다. 그런데 법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300만 원이나 되는 벌금을 물어야 하고 범죄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협의회 승무직종대표자회의는 이 건을 정식재판으로 청구하여 법정 싸움으로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의 기관사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운전 종사자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때를 준비하여 전 조합원 1인 1천원 모금을 해두기도 했다. 

이번 싸움의 의미는 법정 투쟁의 승부를 떠나, 지금까지 종사자 준수사항 위반 명목으로 최초 1회 150만 원 과태료 수준이었던 종사자에 대한 법정 처벌이, 같은 철도안전법에 의해 이제 그 범위나 도를 넘어 징역형이나 수천만 원 벌금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 맞선 도전이라는 데 있다. 무엇보다 불합리한 제도가 현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사기 유지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