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났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
서울교통공사 연신내역 산재사망 1주기 기자회견 및 추모식 개최
9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전기직 노동자 산재 사망 1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진의 책임 규명과 수사 당국의 엄정한 조치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해 6월, 서울지하철 연신내역 전기실에서 발생한 감전 사망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마련되었다. 이날 회견 이후 유족과 조합원들은 연신내역 전기실 앞에서 추모식을 이어갔다.
1년 전 발생한 감전사고…책임자 처벌은 ‘감감무소식’
사망 사고는 2024년 6월 9일 새벽 1시 36분, 연신내역 전기실에서 전기설비 정비 중 발생했다. 고인은 배전반 내 색상표시 정비 작업 도중 급전 상태의 단자에 접촉해 감전됐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2시 40분경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고 직후 노동조합은 긴급 작업중지권을 발동하고, 공사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연이은 기자회견과 고발 조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사측은 사고 책임을 고인의 과실로 돌리거나 말단 직원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노동부는 산안법 위반 과태료(2,440만원)를 부과했지만, 핵심 경영진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지연됐다. 결국 조합과 유족은 2024년 8월, 공사 사장 등 주요 책임자를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현장소장 1인에 대해서만 송치 결정을 내렸고, 공사 사장 등 주요 인사에 대해서는 ‘불송치(각하)’ 처분을 내렸다. 현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검찰 수사 지휘에 따라 사건 처리기간을 연장하며 여전히 수사 의견서를 검토 중이다.
“이 죽음은 구조적 산재다”
공공운수노조법률원 박남선 변호사는 “공사는 이중화 개량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210여 개 전기실을 방치하고 있었고, 감전 위험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인력 충원 없이 단독작업이 지속됐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상 명백한 위반”이라며 서울교통공사의 구조적 책임을 강하게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또한, 전자석 도어락 설치 비용이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해 예방 노력을 소홀히 한 결과가 이번 죽음”이라고 비판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서울교통공사의 안전 인력은 계속 줄어들고, 노동자들은 보수교육조차 받을 시간 없이 일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사고는 필연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책임자를 기소하는 것이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안전한 조직문화를 위한 성찰이어야 한다”라며 실질적인 기소와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태균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는 동료를 잃었다. 고인은 세 아이의 아버지였고,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며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사고는 노동자의 실수가 아니라, 공사가 위험을 알고도 방치한 구조적 산재다. 지금도 사측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말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제2, 제3의 산재는 반드시 또 일어난다”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끝으로 “노동부와 검찰은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명확한 책임자 처벌을 통해 경영의 책임성과 일터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복되는 무책임, 대책 없는 구조조정
현재까지 연신내역 감전사고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전기실 개량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지연되고 있으며, 구조조정 압박 속에 인력 충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를 “중대재해처벌법이 무력화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조합원들은 연신내역으로 이동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들은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