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설치는 ‘안전’ 아닌 기관사 ‘감시용’
결의대회, 투쟁복, 준법투쟁 등 가능한 수단 모두 동원
‘소속은 달라도 철도노동자는 하나!’, 철도와 지하철 지부장(지회장)이 한자리에 모여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지역과 사업장을 뛰어넘는 공동행동 결의였다.
지난 12일 철도노조 용산 6층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는 8개 노동조합 40여 명의 간부가 집결했다. 2년 만에 회의를 열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조합원 전수교육을 시작으로 사복투쟁, 결의대회, 준법투쟁 등 국토부 공청회 대응부터 삭발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날 참석 간부들은 실로 오랜만에 철도와 전국 지하철 노동조합 승무 조합원의 공동투쟁을 결정했다.
연석회의 대표로 회의를 주관한 정동기 승무직종대표자회 의장(철도노조 운전국장)은 “또 한 명의 동료를 잃을 수 있고, 그게 나일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대응하자”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날 정동기 의장은 “사고 예방은 인적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에 주력하는 게 원칙이고, 기관사만 감시하면 그만이라는 운전실 카메라 설치는 사고 예방이 아닌 노동 감시”라고 비판했다.
투쟁의 시작은 국토부였다. 국토부가 자기들만의 연구용역 결과를 근거로 운전실 감시카메라 설치를 강행키로 했기 때문이다. 감시카메라 설치는 10년 넘게 이어져 온 해묵은 문제다. 2013년을 비롯해 해마다 국토부는 안전을 이유로 감시카메라 설치를 추진해 왔지만,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등의 운전실 특수성과 인권침해, 안전 대책이 맞는지를 두고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실제로 2015년 노사가 영상기록장치 설치 문제로 공방이 한창일 때 사측은 당시 장하나 의원의 질의에 “영상기록장치가 철도사고를 예방한다는 공식적인 통계나 국내외 자료는 확인할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2016년 국토부는 철도안전법을 개정해 영상기록장치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시행령에 면제조항을 두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 감사원과 2021년 조응천 의원이 시행령 면제조항이 상위 법률을 위배한다며 삭제를 요구했고, 국토부는 2023년 연구용역을 거쳐 2월 18일 최종보고 이후 2월 중 시행령 개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조발제를 한 정주회 구로승무 지부장은 “국토부의 연구용역은 답이 정해진 짜맞추기”라고 비판했다. “철도체계가 고도화되고 운행 밀도가 높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 심지어 일본조차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다”며 “철도 선진국일수록 감시카메라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국토부의 일방적인 강행처리 방침을 문제 삼았다.
정주회 지부장은 “지금도 운행정보기록장치로 1/100초 단위로 기기취급과 차량상태, 위치, 속도가 기록되고, 무선통화도 녹음하는 데 여기에 카메라까지 동원해 조합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건 기관사의 긴장과 스트레스만 높일 것”이고, “감시카메라가 안전에 도움이 되는지 검증한 자료가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연구자료에 따르면 전체 기관사의 42%가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공항장애 유병률도 일반인구 집단의 15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결과 조합원의 잇따른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2012년 정차역 통과 후 직위해제, 감봉 등으로 압박받던 공사 조합원을 비롯해 사상사고 발생으로 괴로움을 호소했던 조합원, 2015년 신호위반 징계로 두려움을 호소했던 부산교통공사 조합원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주회 지부장은 “그들이 주장하는 감시와 처벌 위주의 사고조사와 예방책은 조합원 앞에 함정 파고 기다리는 격”이라며 “감시카메라로 기관사의 긴장감을 높이면, 열차가 안전해진다는 것은 망상에 가까운 상상”이라고 강조했다.
정주회 지부장은 ‘성실한 직무수행 중에 발생한 휴먼에러는 징계하지 않는다(JR서일본)’거나 ‘인간은 반드시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대책이 필요하다(일본 철도노조 연합회의)’, ‘벌금이나 제재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를 우선 고민해야 한다(독일)’ 등을 외국 사례를 언급하며 국토부의 감시카메라 설치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정주회 지부장은 “기관사 감시와 처벌만으로 지켜질 안전이 아니”라며 대안으로 현장에서부터 위험을 평가하고, 사고조사에 노동자가 참여하고, 감시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책 마련의 길을 제시했다.
- 출처: 철도노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