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희(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대구지하철참사, 사회적 학습 실패의 역사
대구지하철참사 이전에도 수많은 참사가 있었지만 곧 잊혀졌다. ‘세월호안전사회소위원회’는 재난으로부터 어떠한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재난에서 배우지 않기’로 명명한 바 있다(최형섭 외, 2016). 그리고 재난에서 배우지 않았던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를 위치시킨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사고,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가 있었고, 대구지하철참사가 있었다. 모두 “사회적 학습 실패의 역사”의 목록들인 셈이다.
대구지하철참사는 참사가 발생한 2003년에도, 18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조사서를 쓰지 않은 사례다. 참사의 당사자인 유가족들과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의 위치에서 바라본 참사의 서사는 구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목록에 시민들이 들어가야함은 마땅하다. 당시 참사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참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에서도 참사는 기록되지 않고 있다.
사고조사서는 왜 씌여져야 하는가?
이제 와서 어떻게 참사를 기록할 수 있을까? 아니, 왜 기록해야 할까? 우선 참사가 일어난 2월 28일이 되면 나오는 대구지하철참사 관련 언론보도는 갈수록 앙상해다. 참사 당시 언론은 방화범과 두 기관사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행위를 악마화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 전반을 범죄자화 했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참사의 구조적 원인으로부터 사회적 관심을 멀게 했다. 몇몇 보도들은 참사의 구조적 원인에 접근하며 부분적 진실들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족들의 고통과 눈물만이 간간이 보도될 뿐이다. 재난서사의 부재는 유가족들의 고통을 원인불명의 통증처럼 영원하고 해결불가능한 것인양 다루게 된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참사가 발생했다. 언론은 “배버린 선장과 마스콘키를 빼고 탈출한 기관사”라는 자극적인 보도로 대구지하철참사의 서사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대구지하철참사는 “방화범”과 “마스콘키를 빼고 홀로 도망간 기관사” 두 개의 키워드로 기억되고 있는 중이다.
사고조사서를 쓰지 않으면서 참사의 구조적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그로부터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빈 자리에는 ‘당사자 과실’ 혹은 ‘작업자 과실’의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가 들어섰다. <철도안전법>을 통해 마련된 기관사 면허제는 이러한 작업자 과실의 법률적 표현이며, 세월호에서의 선장책임론은 대구지하철참사에서 기관사의 부도덕한 무책임을 반복해 다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지난 18년 동안 참사로부터 사회적 교훈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을뿐만 아니라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어떤 단서들도 봉쇄한 채 손쉬운 ‘작업자 과실론’의 세련된 판본을 광범위하게 유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대구지하철참사를 다시 쓰는 것은 매우 현재적인 과제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의 위험은 모두 노동자가 감당해야할 몫이거나, 감당하지 못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비난과 질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대구지하철참사를 다시 쓰자
대구지하철참사의 ‘사고조사서 다시 쓰기’를 시도하려는 이유는 첫째, 대구지하철참사는 우리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 된 IMF 외환위기 이후의 참사라는 점이다. 재난으로부터 배우지 않고 있는 연속적인 시간성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계기는 어떻게 참사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둘째, 대구지하철참사는 노동현장의 ‘안전사고’가 시민들의 위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례라는 점이다. 참사를 통해 ‘관계자외 출입금지’의 영역이었던 노동현장 내부에서 어떻게 위험이 형성되고 있는지를 사회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사례다.
셋째, 모여 있음이 아니라 모여서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유가족 운동’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은 참사의 희생자이자 시민으로서 당사자를 넘어선 안전사회의 의제를 참사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아마도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구지하철참사의 현재성에도 불구하고 사고조사보고서가 씌여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참사 당시 유가족들과 시민대책위의 요구사항으로 전문가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 구성이 되었지만 비상식적인 파행적 운영으로 보고서는 완성되지 못하였다.
엄밀하게 말해 대구지하철 사고조사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으므로 ‘다시’ 쓰는 과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쓰기’로 이름 붙인 까닭은 참사 당시 몇 안 되는 집요한 언론보도로 밝혀진 부분적 진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진실들은 사고의 구조적 원인에 접근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노동조합이 참사 초기부터 말해왔던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반복적인 행위들도 있었다. 그러나 부분적 사실이 참사의 진실로 구성되지는 못하였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으며, 또 다른 당사자들인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은 참사 이후 왜곡된 사고원인과 예방대책으로 공공교통 현장의 안전은 더욱더 멀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대구지하철참사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로부터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서사가 부재함으로써 그저 ‘예기치 못한 참극’으로 잊혀져 가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남겨져 있는, 그러나 파편화된 진실들을 하나로 엮어야 한다. 또한 불행하게도 자신들의 과오를 방어하기 위해 작성된 대구시의 방대한 ‘백서’가 사고조사서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을 뒤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