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임종일 국토교통부 철도정책안전관은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마련할 때 고용노동부와 협의를 했는데 대비가 필요하다”며 “이대로라면 철도공사나 국가철도공단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하며, 관련 연구용역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서 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을 언급했지만, 실은 전국 철도 지하철 현장과 관련 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것이어서 매우 파급력 있는 발언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가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했다.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기업이 선제적으로 안전에 대한 인프라를 갖추고 시스템을 완비하여 중대재해로부터 노동자들의 소중한 신체와 생명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과 적용 사업장에 대한 제외 및 유예, 외주화 부문 누락 등 이미 “누더기”, “종이호랑이” 라 불리며 산재 피해 유족들이 벌써 개정을 요구하고 있을 정도로 무력화된 상태다.
“종이호랑이”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월 14일 국토교통부 철도안전정책국이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철도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시 사장이 책임을 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안전조치를 완비해 귀책 사유가 없다면 시행령으로 사장의 책임을 감경하는 방안을 연구용역을 통하여 검토 중이다.” 하고 말했다.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이미 사업주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다했다면 처벌하지 않게 되어 있는데 국토교통부는 이를 더 구체화하여 사장 구하기에 나서면서, 사실상 철도 지하철 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겠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무력화
더 분노스러운 것은 철도 지하철 현장은 지금도 꾸준히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가 2021년, 세계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에 맞춰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철도공사와 6개 지하철 공사에서 2016년부터 2019년 사이에만 국가가 인정한 산재 사망 재해가 17건이나 되었다. 해마다 4명 이상이 공식 산재 인정 사망했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번 국토교통부 책임 공무원의 발언에 우리 철도 지하철 현장노동자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분노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나면 관리자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안전조치의 완비랍시고 고작 규정 몇 줄, 안전 매뉴얼 몇 장, 홍보 동영상 몇 분, 안전교육 몇 시간, 감시카메라를 통한 감시 등의 당치도 않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현장을 옥죄이며 사고의 귀책 사유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일들이 전부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면 책임 회피할 것이다. 이러면 중대재해처벌법을 뭐하러 만들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책임 회피
그런데 현행 철도안전법 등 법제도 안에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과 처벌 조항이 넘쳐난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종사자 준수사항은 위반 시 고액의 과태료 벌칙으로 이어져, 올해에만 벌써 대여섯 건이며 수년간 증가 추세다. 면허나 자격정지 등 각종 행정 처분들도 있다. 현장에서는 징계, 교육 등 별도로 처벌받는다. 어디 그뿐인가 시스템 오류가 결합된 업무상 경과실도 형법적 처벌을 피하지 못하기도 한다. 요즘엔 열차 운전실에 감시카메라까지 달겠다고 하고 있다.
감시카메라
그런데 사장, 관리자들의 책임을 경감시키는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란다.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용역하며 필요도 없는 종사자 준수사항 같은 처벌 근거 조항을 만들었던 국토교통부가 이제는 사장과 관리자들의 책임을 경감하는 연구용역이라니!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를 사전에 예방하여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리고 국토교통부는 이를 위한 연구에 몰두할 일이다. 우리는 그것이 감시, 통제와 처벌 그리고 위로부터 강요된 행정주의적 안전 처방으로 될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예컨대 사고가 낫다 하면 당사자를 범죄자로 만들려 하는 관리자들의 조직문화부터 바꿔라.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당치도 않은 방법을 모색하지 말고 안전에 대한 완전한 설비와 시스템을 구축하라. 국토교통부는 진행 중이라는 연구용역을 중단하고, 사장 구하기를 멈추고 노동자의 생명을 먼저 구하라!
2021.12.21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공항철도노조, 광주도시철도노조, 김포도시철도지부, 대구지하철노조, 대전도시철도노조, 부산지하철노조, 메트로9호선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서울메트로9호선지부, 서해선지부, 인천교통공사노조, 용인경전철지부, 우이신설경전철지부, 전국철도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