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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사무국장)

과태료

2021년 한 해만 철도 지하철 운전/승무 노동자들에게 처분된 과태료는 다섯 건이나 된다(11월 현재). 모두 철도안전법 운전종사자준수사항 위반에 의한 것이었다. 그나마 당사자들의 첫 회 위반이어서 과태료 150만 원에 그쳤다. 하지만 재차 위반 시 300만 원 그 다음엔 450만 원을 낸다. 그 법을 보면 알겠지만, 철도안전법령의 종사자준수사항은 평소 종사자들이 하게 되어 있는 일들을 포괄적으로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흔히 범하는 오류(과실)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장애나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면허정지

그러니 하도 억울해서 이 중 네 건은 이의신청을 해 현재는 약식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법원 판단이 있기도 전에 최근 국토교통부는 위 네 건에 대하여 면허정지 경고 처분을 위한 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따졌더니 면허정지 역시 과태료와 같이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조사가 끝나면 과태료 처분 여부와 상관 없이 면허정지 여부를 별도로 심의한다는 것이다. 같은 법의 종사자준수사항 위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법원까지 가서 따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 역시 항의할 계획이다. 

형사 처벌

이와 별도로 최근엔 업무 중 과실에 의한 시설물 파손으로 벌칙금 300만 원을 내라는 법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전같으면 종사자준수사항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되었을 사안이었지만, 업무상 과실(중과실이 아니다)에 의한 철도 시설물 파손(2020년 신설)으로 처벌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조항은 운전종사자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역이든 관제든 차량정비든 또는 시설토목이나 신호통신 업무든, 철도 지하철 현장에서 일하다가 뭐 하나 잘못 고장냈다가는 금새 범죄자가 되게 생겼다. 이 역시 안 되겠다 싶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12월에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국가를 상대로 한 법적 다툼에도 불구하고 이미 각 운영사들은 종사자의 과실 그리고 장애 또는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기정 사실로 보아 당사자에 대한 감봉이나 사내 교육 등 각종 징계를 마친 상태다. 

시스템적 접근

당연히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은 이 같은 이중, 삼중의 처벌에 분노한다. 중층적 처벌도 문제지만, 처벌의 계기가 된 장애나 사고의 원인으로 이와 연관된 인적 오류 또는 과실이 있었음을 들어 처벌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철도 지하철의 온갖 장애나 사고에는 – 그것이 설령 자동일지라도 – 어떤 식으로든 인적 오류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 예방이 불가능했던 시스템 오류나 외부적 요인인 경우가 아닌 한, 장애나 사고 시 인적 오류에 대한 처벌은 사실상 인간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래서 안전은 있을 수 있는 인적 오류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시스템적 접근에 의해 확보된다고 하는 것이 철도 선진국의 오늘날 접근 태도다.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노동자에게 뭔가 과실은 없었는지를 찾는 게 아니라 말이다. 

감시카메라 

그러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철도 지하철 운행이 자동차 운전과 같다고 생각한다. 즉 운전자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운전하면 사고는 안 난다는 단순한 생각이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 세월호 사고 이후 시민 안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열차 운전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자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직후 태백-문곡 간 열차 추돌사고가 일어나자, 정권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사실관계마저 비틀어 기관사를 마녀사냥하며 열차 운전실에 감시카메라를 달도록 하는 지금의 철도안전법을 만들게 했다.(종사자준수사항도 이 직후 신설되었다) 실제로 당시 감시카메라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보수 정치인들과 철도 지하철 사고 수사기관들은 한결같이 시민 안전 운운하며 사고 예방을 위해 감시카메라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그들은 예비 범죄자가 감시카메를 피하듯이 기관사도 감시카메라 밑에서 경각심을 가질 거라는 신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빅브라더

하지만 열차 운전실의 감시카메라의 문제는 숱하게 많다(여기 레일노동저널에는 그에 관한 좋은 기사들과 자료들이 많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여기서 지적할 문제는 지금과 같이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포괄적으로 정해져 있는 철도안전법 체제 하에서는, 감시카메라의 역할이 정부, 수사기관, 운영사 들의 필요에 따라 무한정 확장될 것이라는 점이다. 저들이 감시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고분고분하게 통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다는 말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막는 일에도 쓰여질 것이다.

정말이지, 작업 중인 노동자들을 감시 녹화하는 카메라가 도입 설치된다면, 장애나 사고가 날 경우 이와 시공간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의 행동들을 보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정부나 수사기관 또는 운영사는 현행 철도안전법 체계 하에서 녹화한 영상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현행 철도안전법 제39조의3 제4항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1. 교통사고 상황 파악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2.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에 필요한 경우, 3. 법원의 재판업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영상기록을 이용하거나 다른 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동법  시행규칙 제76조의3은 녹화한 영상을 3일 이상 보관하라고 할뿐 제한이 없으며, 위 세 경우를 대비해 함부로 삭제하지도 못한다) 이는 말 그대로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빅브라더의 탄생이다.

따라서 현실의 상황을 돌이켜 감시카메라의 기능을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것은 감시와 통제 그리고 처벌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철도안전법과 철도안전시스템의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철도안전법과 철도안전시스템의 대대적 개혁 없이, 감시카메라를 도입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사태의 개선은커녕 악화일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싸우는 방법뿐이다. 

전국 철도 지하철 운영기관 소속의 운전/승무 노동자들이 민주당사 앞에서 지난 10월 15일 이후 주간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진: 철도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