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1월 13일이다. 1987년 전국을 뒤흔든 대투쟁으로 들불처럼 일어선 민주노조 진영은 1988년 11월 13일,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통해 노동자의 힘을 가슴 벅차게 확인했다. 그 후 전국의 민주노조는 매년 11월 13일을 전후해 전태일 정신을 기리며 노동자대회를 개최해왔다. 11월 전국노동자대회는 세계 노동절(메이데이)에 버금가는 한국 노동운동의 최대 상징적 행사이자 투쟁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 전국노동자대회가 갖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올해는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한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맞는 해다, 노동자 민중은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에 붙인 불꽃으로 암흑의 시대를 비추며 뚜벅뚜벅 전진해 왔다.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지만, 대한민국 노동 현장 곳곳은 아직도 50년 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떨어져 죽고, 깔려 죽고, 과로로 지쳐 죽는 산재 왕국의 오명은 그대로다. 밤샘 노동, 장시간 노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키는 탈법의 노동현장도 널려 있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조차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수백만에 달하는데도 노조할 권리를 옥죄고 노동조합을 불온시하는 야만이 판치고 있는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정부와 국회는 ILO핵심협약 비준을 명분 삼아 되레 노동자의 기본권을 후퇴시키는 노동법 개악을 강행하고 있다. 개악안을 보면 ‘노동존중’을 되뇌고 전태일 열사에게 훈장을 수여한 정부가 맞는지 눈을 의심케 한다. 쟁의시 사업장 내 집회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한도 3년 연장, 산별노조 활동 제한 등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키는 내용 일색이다. 이는 노조로 조직된 사업장의 노조활동 약화와 탄압을 겨냥할 뿐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 즉 오늘날의 ‘전태일’들의 노동기본권을 박탈하는 심각한 악법인 것이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그리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둔 오늘, 모든 노동자의 마음은 그래서 더욱 무겁고 비장할 수밖에 없다. 올해 전국노동자대회는 코로나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소규모 동시다발 집회로 개최된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은 서울 시내 주요 역사에서 전태일3법 쟁취를 위한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한다. ‘하루 행사’로 여길 일이 아니다. 2020년 전국노동자대회는 노동악법 철폐와 전태일3법 쟁취로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을 떼는 날이다.
2020년 11월 13일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