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은 지난 5월 25일 서울시의회에, 20년 8월 31일로 종료되는 9호선 2,3단계의 재위탁 동의안을 제출했다. 9호선 2,3단계는 3년마다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다. 9호선 전체는 1단계와 2,3단계가 나눠져 있고, 차량정비는 메인트란스(주)라는 현대로템 계열사가 맡는다. 9호선이 조각조각 나있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이유다.
“서울시는 현물출자 통해 9호선 2, 3단계를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게 하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민을 위한 9호선 정상화 청사진을 제출하라!”
얼마 전 5월 28일은 구의역에서 김군이 컵라면 하나 먹을 시간 없이 혼자 일하다 목숨을 잃은 지 4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날에 맞춰 많은 교통 전문가들이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하다.’, ‘도시철도의 방만한 위탁 운영 등이 잠재적 “김군”을 만들고 있다.’ 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9호선 노동자들을 또 다른 “김군”으로 거론했다.
그러나 그 삼일 전인 5월 25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의회에 “서울특별시 9호선2, 3단계 구간 관리운영사업 민간위탁 동의안”을 제출했다. 그동안 우리 협의회와 서울시민들이 그토록 원했던 9호선 2, 3단계의 공영화에 대한 바람을 저버리면서 말이다.
이제 서울시 의회가 박 시장의 그 “동의안”을 6월 정례회의에서 통과시킨다면 9호선 2, 3단계는 8월 31일 계약 마감과 함께 세 번째 수탁 업체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노동자들 역시 낯선 곳으로 쫓겨날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수년 넘게 손에 익은 일들과 그 사람들을 이렇게 찢어 놓을 생각을 하다니! 서울시 의회는 이 “동의안”을 반드시 부결시켜야 한다.
돌이켜보건대 이번 동의안 제출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가 발바닥이 닳도록 서울시를 향해, 기자회견을 하고 1인 시위를 하고 토론회를 했어도, 시민 설문조사를 받아 가져다주고 어떤 때는 파업하고 추운 날 더운 날 안 가리며 수십 일 농성을 했어도, 서울시는 조금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서울시는 작년 프랑스운영사 계약 해지 후 9호선 1단계를 서울메트로9호선(주)의 직접 운영으로 전환했다. 전환 당시 조직 통합에 따른 절감된 비용을 인력충원에 우선 투자하고 인금 인상 및 처우개선을 서울교통공사 수준으로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약속 이행과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2, 3단계는 서울교통공사로 전환할 듯 폼만 잡다가 재위탁으로 결정했다. 9호선에서 일하는 또 다른 하청인 차량정비 메인트란스는 정상화 논의에서 배제하고 9호선의 실재 안전에 대한 대책은 없는 주먹구구식 땜빵 정책만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9호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도 많은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동종 업무에 비해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인력, 저임금 등등. 마치 이번 “동의안”과 함께 제출된 “민간위탁 성과보고서”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화자찬 일색이지만, 민간 위탁 동의안의 첨부 서류라는 바로 그 사실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듯이, 결론은 ‘얼마 안 되는 사업비와 인력으로 효율적으로 잘 운영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맥락에서 “효율”의 다른 말이 9호선“지옥철”임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민간의 위탁으로 난몰라라는 식의 서울시 방임은 9호선의 안전보다는 이해관계자들의 목적만을 위해 사용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9호선 2, 3단계가 3년마다 기약 없이 위탁을 전전하는 동안 한정된 사업비가 시민과 노동자의 편안함과 인간다운 근로조건을 위해 쓰일 일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9호선 전체의 차량 정비를 맡은 메인트란스(주)가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며 사업비의 일부를 투자자의 배당으로 주고 남은 빠듯한 사업비로는 전동차나 노동자의 수명을 연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까운 서울교통공사의 통합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과거 1-4호선과 5-8호선으로 대변되는 서울 지하철 1기와 2기는 분리 운영되면서 엄청난 낭비적 요소들, 예컨대 성과주의와 관료주의 등의 폐단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이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들이 이어졌고 그 꼭대기에는 “메피아”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1-8호선의 통합이 시민과 노동자를 위해 편안하고 안전한 공공 교통 서비스를 위한 디딤돌이 되주길 바라는 기대가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 서울시의 “동의안”을 보면 암담할 뿐이다.
정말이지 서울시가 서울 도시철도 정책에서 서울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오히려 과거 경제 위기 시절, 서울시가 도시철도 3기 정책을 민간자본 투자/유치사업 중심으로 전환한 뒤 서울시의 반성이나 재평가를 우리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이번 동의안을 보면, 서울시의 도시철도 정책은 공공성이 아닌 기업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9호선 2, 3단계에 필요한 것은 민간 위탁을 전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교통공사에게 현물출자, 운영하게 함으로서 민간 위탁을 종식하고 이곳의 노동자들에겐 안정적이고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일터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9호선을 만들어줄 것이다. 나아가 서울시민을 위한 1-8호선과 9호선의 미래 지향적, 장기적 공공교통 서비스로의 통합적 운영의 청사진이 필요하다. 효율 중심에, 금방 만들어졌다 없어질 “지옥철”의 철도 운영사가 아닌, 노동자와 시민이 편안하고 안전한 공공 철도를 위한 비전 말이다.
이에 전국의 철도 지하철, 4만 4천여 노동자를 대표하는 우리 협의회는 서울시에게 요구한다. 9호선 2,3단계 노동자들이 배제돈 민간위탁 야합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책임 있는 주체들이 진정성 있고 투명한 대안을 논의할 수 있는 노·사·관·정의 협의를 즉각 시작하라!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번 “동의안”을 스스로 철회하고 서울시 의회는 이를 거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0년 6월 3일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